유리 가가린(Yuri-Gagarin)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 도달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있습니다.
혹자는 그를 냉정시대가 낳은 영웅으로만 치부하기도 하지만
이념을 떠나 인류 역사에 새로운 발을 내딛은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초기 생애
우주 비행사이자 우주선 조종사인 유리 가가린(Yuri Gagarin)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그의 업적은 당대의 전형적인 소련(Soviet Union)의 영웅으로 그려졌습니다.
가가린은 1934년 3월 9일, 소련의 클루시노(Klushino)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집단 농장에서 근무했으며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의 가족은 그자츠크(Gzhatsk)로 이주했고 그는 그곳에서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1950년, 가가린은 철강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야간학교에 편입해 학업을 이어갔으며,
이듬해에는 사라토프 산업기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두 노동자로일하면서 현지에 있는 비행클럽에 다니면서
비행기 조종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파일럿으로의 성장
가가린은 사라토프의 비행 클럽에서 조종기술을 배운 후
오렌부르크(Orenburg)에 위치한 제1 칼로프 공군 조종사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공군 조종사 학교를 졸업 한 후 가가린은 소련과 노르웨이 국경 근처의 루오 스타리
공군기지로 배치되어 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60년에 가가린은 19명의 다른 조종사와 함께 소련의 우주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할
비행사로 선택되어 우주비행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가가린은 20의 조종사들 중 가장 뛰어난 후보 중 하나였으며, 실제 훈련에서도
그 자질을 증명해냈습니다.
마침내 그는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가장 먼어 우주에 도달할 우주인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최초의 우주비행사
1961년, 가가린은 보스톡 1호(Vostok I)우주선을 이용해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궤도를 공전한 우주비행사가 되었습니다.
보스톡 1호의 임무의 성공 후 가가린은 소련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사로 잡은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보스톡 1호의 임무 성공은 단순히 우주비행사를 탄생시킨 것 만이 아니라 냉전시대에 소련의
힘이 미국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입니다.
이 업적으로 인해 그는 1962년, 소련 의회의 부의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공산주의청년연맹 중앙위원회에도 선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주 비행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했고 이후 우주 훈련시설로 복귀해서
재사용 가능한 우주선을 설계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죽음과 업적
가가린은 정치인과 우주비행사로서 소련정부에 봉사한 후 파일럿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1968년 4월 12일, 그는 소련 공군 소속의 MiG-15TUI를 타고 비행 훈련을 하는 중 다른 파일럿이 조종하는
MiG-15TUI와 거의 충돌할 뻔한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이 사고로 의식을 잃은 가가린은 그의 비행기를 조종할 수 없게 되었고 비행기는 그대로 추락해
그는 사망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우주비행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후에도 유리 가가린은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보여준 우주 비행사이자
소련에 영광을 가져다준 인물로 대중에게 기억되었습니다.
'인문과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마존 강; 세상에서 가장 큰 강 (0) | 2020.06.21 |
---|---|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 -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하다. (1) | 2020.06.17 |
냉장고의 역사 (0) | 2020.06.12 |
삼국지(三國誌)에서 유래한 고사성어 3가지 (0) | 2020.06.11 |
[인물]다산 정약용의 개혁과 그 의미 (0) | 2020.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