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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역사

삼국지(三國誌)에서 유래한 고사성어 3가지

안녕하세요. Dr. 캣츠비 입니다.

 

소설 삼국지(三國誌) 읽어보셨나요?

저 Dr. 캣츠비도 이문열 작가님이 쓰신 삼국지를 탐독하곤 했었는데요,

 

저마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대의를 위해 또는 개인의 영광을 위해 활약하는

모습이 저절로 상상이 되곤 했습니다.

 

진나라 시절 학자인 진수(壽)가 편찬한 삼국지는 위,촉,오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정사이자,

이후 중국 역사는 물론 한국과 일본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삼국지의 영향력 만큼이나 수많은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는데요,

오늘은 삼국지에서 유래한 유명한 고사성어 3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읍참마속( 泣斬馬謖 )

 

해석: 울면서 마속을 베다

의미: 공정한 일처리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리다.

 

유래:

촉()나라의 재상이었던 제갈량은 군대를 동원해 위나라를 공격하고

큰 전과를 거둡니다. 이후 위()니라의 참모인 사마의는 20만 군사를 준비하여

촉나라의 군량 수송로인 가정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촉나라의 뛰어난 장수였던 마속이 본인이 가정 수비의 임무를 맡겠다며

자원합니다. 제갈량은 마속이 뛰어난 장수임에는 분명하나

지혜가 사마의에 미치지 못해 망설이게 됩니다.

하지만 마속은 자신이 전투에서 패할 경우 자신의 목을 베어도 좋다고

호언장담했고 결국 제갈량은 마속에게 가정 수비의 임무를 맡깁니다.

제갈량 인물화, 출처:위키피디아

제갈량은 전장으로 떠나는 마속에게 가정의 지형상 평지에 진을 치고

사마의의 군대와 싸우라고 조언했지만 마속은 자의적인 판단으로

산 위에 진을 치고 전투를 벌이지만 대패를 당합니다.

 

이에 제갈량은 전투에서 패한 마속을 처형하는데,

뛰어난 장수이자 자신과 가까운 친분을 맺고 있는 마량의 동생인

마속을 처형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에서 읍참마속이 유래했습니다.

 

또다른 촉나라 장수인 장완이 마속의 재능이 아까워 처형을 말렸지만

제갈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손무가 싸움에서 매번 이긴 것은 군율이 엄격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사사로운 정 때문에 군율을 어기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군율을 엄격히 적용해서

대의를 바로잡아야 한다”

 

 

난형난제(難兄難弟)

 

해석: 형제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뜻: 서로간에 능력이 비슷하여 상하우열을 가릴수 없다는 뜻

 

유래

후한 말기, 11대 환제와 12대 영제대 시절, 환관들의 전횡이 심하여 올곧은 관료나 퇴임한 관료인

태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당인(黨人)이라는 정치단체를 결성하여 환관정치에 저항하며

 '당고의 화(黨錮의 禍)' 라는 탄압사건을 일으키게 됩니다.
진식(104-187)은 태구현의 현감으로 명망이 높았으나 역시 환관정치에 저항하여
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처형되지 않고 나중에는 낙향 후 손자들을 교육시키며 노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장남인 원방(元方)은 후한 말 동탁 아래에서 시중으로 승진했으나 동생인 계방(季方)은 젊어서 죽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형제 모두 명성을 얻어 아버지나 형과 함께 세 사람의 걸출한 인물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원방의 아들 장문(張文.) 또한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 위왕 조조 정권을 거쳐 위문제 조비 밑에서

대신이 되어 유명한 '구품관인법(처음으로 관직을 의계품으로 나눈 관제 및 관리등용법)'을 입안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장문이 어릴 적에 계방의 아들인 효선(孝先)과 서로 자기 부친의 공적이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며

다툰 일이 있었는데 결론이 나지 않자 조부인 진식에게 결론을 요청했습니다.

 

진식은
"원방은 형, 계방은 아우지만 덕행으로 보면 원방을 형이라고 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계방을 아우라고 하기도 어렵다(元方難爲其兄, 季方難爲其弟)."

'난형난제(難兄難弟)'란 말은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로 형제의 우열을 가릴수 없다는 뜻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는 상하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의미로도 확장되었습니다.

 

 

파죽지세(破竹之勢)

 

해석: 대나무를 쪼갤 듯한 기세

뜻: 아무도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기세

 

유래:

삼국시대 말기, 오(吳)나라는 손호의 폭정으로 인해 점차 세력이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오나라 남쪽에서 곽마의 난이 일어나고 이 틈을 타 사마염이 이끄는 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하게 됩니다. 진나라는 곽마의 난으로 인해 병력이 분산된 오나라를

상대로 계속해서 승리하게 되고 강릉을 넘어 무창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이후 작전회의에서 한 장수가 지금의 전과도 충분히 훌륭하고

곧 장마가 다가오고 전염병이 돌 우려가 있으니 이쯤에서 그만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두예가 말을 하기를

“무슨 소리를 하는겁니까? 지금 우리 병사들의 사기는 대나무를 쪼갤 기세입니다.

대나무는 처음 두 세마디에만 칼날을 넣으면 그 다음에는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는 말입니까?”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마의는 두예의 말이 옳다고 판단하고 계속해서 공격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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